웹사이트 상위노출 [김숨의 위대한 이웃]멀리 있는 아빠,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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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상위노출 나는 ‘사람’으로 왔다.
나는 하늘 아래에 있다. 그리고 땅 위에 서 있다. ‘사람’으로 온 모든 존재가 그렇듯. 나는 북적거리는 저녁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내의 품에는 6월에 태어난 딸이 안겨 있다.
딸이 태어날 때 나는 멀리 있었다. 멀리, 이곳에.
3700여㎞ 떨어진 이곳에서 내 첫아이인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나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감격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에서 글자를 하나씩 따 ‘하니’라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주었다.
아내의 위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한국말로 의사에게 약 처방을 받고 마트에 들러, 달걀 한 판과 마늘 한 주먹을 샀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내의 배를 가리키며 ‘위, 위, 아파요’ 하고 설명했다.
이곳은 어딜까. 13년 동안 아무도 내게 이곳이 어딘지 말해주지 않았다. 휴대전화 대리점, 빵집, 노래방, 단란주점, 직업소개소, 복권 판매점, 고깃집, 과일가게, 김밥천국. 방글라데시 국적의 나는 13년 전에 근로 비자를 받아 이곳으로 날아왔다. 가구 공장에서 가구를 만들고 있는 나는 몇년 전에 E-7-4(숙련기능인력) 비자를 취득했다. 13년 전 이곳에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나는 훗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오게 될 줄 몰랐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건 5년 전이다. 서른두 살 되던 해 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사는 고향집에 다녀왔다. 나는 남편이 되고 싶었고,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가족을 갖고 싶었다. 맞선을 본 여자와 결혼하고 한 달 남짓 신혼의 나날을 보내다 혼자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때 내가 갖고 있던 비자의 기간이 남아 있었던 데다 나는 더 돈을 벌어야 했다. 아내와 헤어지는 게 슬프고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다. 내가 소지한 비자는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지만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타고, 그곳에 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월세로 사는 원룸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내는 거리에 들끓는 온갖 소리와 분주함을 잠재우며 조용히 걸어간다. 딸은 곤히 잠들었다.
아내는 한국말을 할 줄 모르지만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곳에 남편인 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최장 9개월까지 이곳에서 머물 수 있다. 그 기간이 거의 다 돼 아내는 며칠 뒤 다시 딸과 함께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
아내와 딸이 떠나면 나는 또다시 혼자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혼자 잠들고, 혼자 깨어나고, 공장 일이 없는 날 혼자 밥 먹고, 혼자 이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내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원 남짓이다. 원룸 월세로 40만원을 내고, 전기세와 수도세와 가스요금 등으로 10만원을 내면 150만원 남짓 남는다.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살려니 빠듯하다. 함께 사는 게 좋지만 지출이 많아서 힘들다.
나는 13년을 일했지만 고향에 아직 내 집이 없다. 이곳에도 (내 소유는 아니더라도 집이라고 할 만한) 내 집이 없지만 나는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다. 본드와 시너 냄새 때문에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나는 오래 일하고 싶다. 고향에 돌아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인근 다른 가구 공장이 망했다.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그들도 나처럼 멀리서 왔다) 수개월치 임금을 받지 못하고 흩어졌다. 내가 일하는 가구 공장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임금을 밀리지 않고 주고 있지만, 도미노 효과처럼 공장들이 망하고 있어서 불안하다.
우리 가족이 탄 노란 마을버스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황금빛 논들 사이로 난 도로를 달려가다 물류창고와 작은 공장들을 지나 계속 달려간다. 나는 내가 인생에서 무척 축복된 (자식들의) 탄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겨울까. 나는 버스와 함께 흔들리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 나는 아내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저녁 우리에겐 달걀이 서른 알이나 있어.’
16일 오후 2시 33분쯤 전남 진도군 병풍도 남동쪽 9㎞ 해상에서 24t급 근해안강망 어선 A호가 전복됐다.
A호에는 선장 등 선원 7명이 타고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어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목포해양경찰서는 승선원 전원을 구조했다.
이 가운데 2명은 골절과 가슴통증 등을 호소해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조업 중이던 A어선이 어획물의 무게를 이게지 못하고 균형을 잃으면서 전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복된 A호는 조만간 목포항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100년 전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작은 입자의 세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처음 만들어냈다. 이들의 뒤를 이어 20세기 물리학의 발전을 주도한 다음 세대의 훌륭한 물리학자들이 있다. 헬륨의 초유체 현상에 대한 연구로 196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위대한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도 이 중 하나다.
란다우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전해진다. 물리학자답게 란다우는 선배 과학자의 업적의 위대함을 수학에 등장하는 로그값을 이용해 숫자로 표현했다. 100은 10의 제곱이어서 로그값이 2이고 1000은 10의 세제곱이어서 로그값이 3이다. 이처럼 로그값으로 1의 차이가 나면 원래값의 차이는 무려 10배가 된다. 로그의 척도를 쓰는 지진의 규모도 마찬가지여서, 규모 7인 지진에 비해 규모 8인 지진의 진폭은 무려 10배다.
물리학자의 업적과 지적 능력을 숫자로 표시한 란다우 척도에서는 값이 작을수록 더 위대한 물리학자다. 란다우는 뉴턴의 란다우 척도 값으로 0, 아인슈타인은 0.5, 그리고 양자역학의 창시자 하이젠베르크에게는 1의 값을 부여했다. 란다우 스스로는 자신에게 2.5를 주었다가 이후에 2로 바꿨다.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자신은 뉴턴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셈이다. 란다우 척도는 재밌는 이야기 정도이지 정확한 계산이 아니다. 하지만, 란다우가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뉴턴을 꼽은 것은 분명하다.
란다우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많은 물리학자가 위대한 물리학자로 뉴턴을 첫손으로 꼽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전 역학을 처음 완성한 사람이 뉴턴이다. 학창 시절 배우는 세 개의 운동법칙을 제안했고,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보편 중력의 수학적 표현을 발견했으며, 이 둘을 결합해 온갖 운동을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물리학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새로운 수학도 함께 만들어 냈다는 것도 내가 뉴턴에게 크게 감탄하는 이유다. 뉴턴은 자신의 고전 역학의 체계를 만들어 가면서 미적분학도 함께 만들었다.
수식 기호 위에 작은 점을 찍어 미분을 표시하는, 지금도 물리학자들이 널리 이용하는 표기법을 시작한 이가 바로 뉴턴이다. x 위에 작은 점을 찍을 때마다 뉴턴을 떠올릴 일이다.
뉴턴은 변분법의 수학을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중력장 안에 있는 물체가 두 점 사이를 가장 짧은 시간에 움직이는 경로를 찾는 문제를 처음 들은 뉴턴은 하룻밤 안에 변분법으로 답을 찾아 학술지에 익명으로 투고한다. 이 논문을 본 요한 베르누이는 발톱 자국만 봐도 사자임을 알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뉴턴이 저자임을 금방 눈치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의 모든 위대한 물리학자는 거인 뉴턴의 어깨 위에서 더 먼 곳을 본 이들이다.
인터넷에서 ‘뉴턴의 산’이라는 검색어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둥근 지구 위 우뚝 솟은 산이 그려져 있고 산꼭대기에서 던진 물체의 여러 궤적도 표시되어 있다. 이 그림의 산을 물리학자는 ‘뉴턴의 산’이라고 부른다. 대충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나면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산꼭대기에서 대포를 쏜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 빠르지 않다면 포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멀지 않은 산 아래 땅에 떨어진다. 속도가 점점 늘어나면 포탄은 더 먼 곳에 떨어지고 결국 저 멀리 지구 반대쪽에 떨어질 수도 있다. 이보다 속도를 더 빠르게 하면 어떨까? 산꼭대기에서 쏜 포탄은 결국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의 산꼭대기에 도달할 수도 있다. 뉴턴은 탐정사무소 이 아름다운 그림 한 장으로 지면 근처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포물선 운동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달의 원운동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이 질적으로 같은 운동이라는 것을 찾아낸 이가 바로 뉴턴이다. 나와 뉴턴의 차이처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이 다르면 천지 차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이 정말 다르다는 것에 빗대어 둘 사이 큰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뉴턴은 처음으로 하늘과 땅에서의 운동이 같다는 것을 밝혔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똑같은 물리학이 성립한다는 것을 보였다. 천지 차이를 없앤 사람이다.
나는 하늘 아래에 있다. 그리고 땅 위에 서 있다. ‘사람’으로 온 모든 존재가 그렇듯. 나는 북적거리는 저녁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내의 품에는 6월에 태어난 딸이 안겨 있다.
딸이 태어날 때 나는 멀리 있었다. 멀리, 이곳에.
3700여㎞ 떨어진 이곳에서 내 첫아이인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나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감격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에서 글자를 하나씩 따 ‘하니’라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주었다.
아내의 위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한국말로 의사에게 약 처방을 받고 마트에 들러, 달걀 한 판과 마늘 한 주먹을 샀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내의 배를 가리키며 ‘위, 위, 아파요’ 하고 설명했다.
이곳은 어딜까. 13년 동안 아무도 내게 이곳이 어딘지 말해주지 않았다. 휴대전화 대리점, 빵집, 노래방, 단란주점, 직업소개소, 복권 판매점, 고깃집, 과일가게, 김밥천국. 방글라데시 국적의 나는 13년 전에 근로 비자를 받아 이곳으로 날아왔다. 가구 공장에서 가구를 만들고 있는 나는 몇년 전에 E-7-4(숙련기능인력) 비자를 취득했다. 13년 전 이곳에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나는 훗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오게 될 줄 몰랐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건 5년 전이다. 서른두 살 되던 해 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사는 고향집에 다녀왔다. 나는 남편이 되고 싶었고,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가족을 갖고 싶었다. 맞선을 본 여자와 결혼하고 한 달 남짓 신혼의 나날을 보내다 혼자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때 내가 갖고 있던 비자의 기간이 남아 있었던 데다 나는 더 돈을 벌어야 했다. 아내와 헤어지는 게 슬프고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다. 내가 소지한 비자는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지만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타고, 그곳에 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월세로 사는 원룸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내는 거리에 들끓는 온갖 소리와 분주함을 잠재우며 조용히 걸어간다. 딸은 곤히 잠들었다.
아내는 한국말을 할 줄 모르지만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곳에 남편인 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최장 9개월까지 이곳에서 머물 수 있다. 그 기간이 거의 다 돼 아내는 며칠 뒤 다시 딸과 함께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
아내와 딸이 떠나면 나는 또다시 혼자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혼자 잠들고, 혼자 깨어나고, 공장 일이 없는 날 혼자 밥 먹고, 혼자 이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내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원 남짓이다. 원룸 월세로 40만원을 내고, 전기세와 수도세와 가스요금 등으로 10만원을 내면 150만원 남짓 남는다.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살려니 빠듯하다. 함께 사는 게 좋지만 지출이 많아서 힘들다.
나는 13년을 일했지만 고향에 아직 내 집이 없다. 이곳에도 (내 소유는 아니더라도 집이라고 할 만한) 내 집이 없지만 나는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다. 본드와 시너 냄새 때문에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나는 오래 일하고 싶다. 고향에 돌아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인근 다른 가구 공장이 망했다.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그들도 나처럼 멀리서 왔다) 수개월치 임금을 받지 못하고 흩어졌다. 내가 일하는 가구 공장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임금을 밀리지 않고 주고 있지만, 도미노 효과처럼 공장들이 망하고 있어서 불안하다.
우리 가족이 탄 노란 마을버스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황금빛 논들 사이로 난 도로를 달려가다 물류창고와 작은 공장들을 지나 계속 달려간다. 나는 내가 인생에서 무척 축복된 (자식들의) 탄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겨울까. 나는 버스와 함께 흔들리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 나는 아내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저녁 우리에겐 달걀이 서른 알이나 있어.’
16일 오후 2시 33분쯤 전남 진도군 병풍도 남동쪽 9㎞ 해상에서 24t급 근해안강망 어선 A호가 전복됐다.
A호에는 선장 등 선원 7명이 타고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어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목포해양경찰서는 승선원 전원을 구조했다.
이 가운데 2명은 골절과 가슴통증 등을 호소해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조업 중이던 A어선이 어획물의 무게를 이게지 못하고 균형을 잃으면서 전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복된 A호는 조만간 목포항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100년 전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작은 입자의 세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처음 만들어냈다. 이들의 뒤를 이어 20세기 물리학의 발전을 주도한 다음 세대의 훌륭한 물리학자들이 있다. 헬륨의 초유체 현상에 대한 연구로 196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위대한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도 이 중 하나다.
란다우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전해진다. 물리학자답게 란다우는 선배 과학자의 업적의 위대함을 수학에 등장하는 로그값을 이용해 숫자로 표현했다. 100은 10의 제곱이어서 로그값이 2이고 1000은 10의 세제곱이어서 로그값이 3이다. 이처럼 로그값으로 1의 차이가 나면 원래값의 차이는 무려 10배가 된다. 로그의 척도를 쓰는 지진의 규모도 마찬가지여서, 규모 7인 지진에 비해 규모 8인 지진의 진폭은 무려 10배다.
물리학자의 업적과 지적 능력을 숫자로 표시한 란다우 척도에서는 값이 작을수록 더 위대한 물리학자다. 란다우는 뉴턴의 란다우 척도 값으로 0, 아인슈타인은 0.5, 그리고 양자역학의 창시자 하이젠베르크에게는 1의 값을 부여했다. 란다우 스스로는 자신에게 2.5를 주었다가 이후에 2로 바꿨다.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자신은 뉴턴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셈이다. 란다우 척도는 재밌는 이야기 정도이지 정확한 계산이 아니다. 하지만, 란다우가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뉴턴을 꼽은 것은 분명하다.
란다우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많은 물리학자가 위대한 물리학자로 뉴턴을 첫손으로 꼽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전 역학을 처음 완성한 사람이 뉴턴이다. 학창 시절 배우는 세 개의 운동법칙을 제안했고,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보편 중력의 수학적 표현을 발견했으며, 이 둘을 결합해 온갖 운동을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물리학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새로운 수학도 함께 만들어 냈다는 것도 내가 뉴턴에게 크게 감탄하는 이유다. 뉴턴은 자신의 고전 역학의 체계를 만들어 가면서 미적분학도 함께 만들었다.
수식 기호 위에 작은 점을 찍어 미분을 표시하는, 지금도 물리학자들이 널리 이용하는 표기법을 시작한 이가 바로 뉴턴이다. x 위에 작은 점을 찍을 때마다 뉴턴을 떠올릴 일이다.
뉴턴은 변분법의 수학을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중력장 안에 있는 물체가 두 점 사이를 가장 짧은 시간에 움직이는 경로를 찾는 문제를 처음 들은 뉴턴은 하룻밤 안에 변분법으로 답을 찾아 학술지에 익명으로 투고한다. 이 논문을 본 요한 베르누이는 발톱 자국만 봐도 사자임을 알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뉴턴이 저자임을 금방 눈치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의 모든 위대한 물리학자는 거인 뉴턴의 어깨 위에서 더 먼 곳을 본 이들이다.
인터넷에서 ‘뉴턴의 산’이라는 검색어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둥근 지구 위 우뚝 솟은 산이 그려져 있고 산꼭대기에서 던진 물체의 여러 궤적도 표시되어 있다. 이 그림의 산을 물리학자는 ‘뉴턴의 산’이라고 부른다. 대충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나면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산꼭대기에서 대포를 쏜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 빠르지 않다면 포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멀지 않은 산 아래 땅에 떨어진다. 속도가 점점 늘어나면 포탄은 더 먼 곳에 떨어지고 결국 저 멀리 지구 반대쪽에 떨어질 수도 있다. 이보다 속도를 더 빠르게 하면 어떨까? 산꼭대기에서 쏜 포탄은 결국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의 산꼭대기에 도달할 수도 있다. 뉴턴은 탐정사무소 이 아름다운 그림 한 장으로 지면 근처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포물선 운동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달의 원운동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이 질적으로 같은 운동이라는 것을 찾아낸 이가 바로 뉴턴이다. 나와 뉴턴의 차이처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이 다르면 천지 차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이 정말 다르다는 것에 빗대어 둘 사이 큰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뉴턴은 처음으로 하늘과 땅에서의 운동이 같다는 것을 밝혔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똑같은 물리학이 성립한다는 것을 보였다. 천지 차이를 없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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