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전설투표 [아시아 Z세대 혁명②]밈으로 저항하는 세대, 거리와 SNS를 장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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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용감한 분홍’(브레이브 핑크) 운동을 벌이며 SNS를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이들은 분홍색 색감의 필터를 씌운 ‘셀카’나 풍경 사진, K팝 아이돌 사진 등을 공유하거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누리꾼들이 분홍색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 8월28일(현지시간) 자카르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시위에 나타난 한 여성 때문이다. 분홍색 히잡을 쓴 이 여성은 무장한 경찰이 시위대를 밀치자 이들 앞으로 다가가 대나무 막대기와 인도네시아 국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이 모습은 용기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분홍색은 올해 인도네시아 시위의 상징색이 됐다.
SNS에는 한글 암호도 등장했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옮겨 적은 문장으로 소통했다. 여러 누리꾼은 정부를 향해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등으린 락얏 아파 수샇냐”라고 적었다. 이는 인도네시아어로 ‘그냥 사과하고 국민 말 좀 들으면 되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렵나’라는 뜻이다.
일본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해적 깃발도 인도네시아 시위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부패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 모험하는 만화 주인공 루피는 배에 이 깃발을 꽂고 다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해적 깃발이 지난 7월부터 사용됐다. 시민들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독립기념일(8월17일)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국기 게양을 강요하자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반발하기 위해 해적 깃발을 대신 내걸었다. 지난 8월 국회의원 주택수당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에서도 해적 깃발을 들고나왔다.
해적 깃발 시위는 필리핀 시위 현장으로 번졌다. 검은색 옷을 입은 시위대는 지난달 2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해적 깃발을 흔들며 경찰과 대치했다.
필리핀 청년들은 시위 현장에서 악어 모형을 꺼내 들기도 했다. 시위대는 지난달 21일 필리핀 다바오시에서 약 5m 길이의 초대형 악어 모양 케이크와 ‘레촌 부와야’라고 불리는 구운 악어 고기 등을 나눠 먹었다. 악어 모양의 인형을 들고 오거나 악어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악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부패한 정치인’을 상징한다.
필리핀 정부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은 3년간 6160억필리핀페소(약 1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홍수 기반시설에 투입했지만 일부 시설은 부실 시공되거나 착공이 이뤄지지 않았다. 외신들은 탐욕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 모형이 홍수 대응 예산을 횡령해 젊은이들의 미래를 집어삼키는 정치인과 사업가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지난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고 고용노동부의 여성 고용 정책 일부를 이관하는 내용도 담겼다. 보도에 따르면, 성평등 관점에서 정부 전 부처 정책을 총괄·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실·국 개편이 담긴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이번주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곧 출범할 성평등가족부는 절반의 의미만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성평등 정책이 특정 부처에 국한돼 추진된다면 매우 제한된 범위에 그칠 수 있고, 그러면 정책 성과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별 임금 격차는 이를 전담해온 고용노동부에 가장 큰 책임과 정책 권한이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성별 분리를 초래하고 지속시켜온 교육제도나 산업별 특성, 기업문화와 관행, 출산과 보육 지원 등 여러 구조적 요인들이 얽혀 형성된 산물이다.
따라서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평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물론, 교육과 산업·기업·보육 등의 정책을 전담하는 부처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평등가족부가 정부 정책 전반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갖는 것은 몸집 늘리기가 아니라 업무 수행의 핵심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빠졌지만, 앞으로 수정해가야 할 부분이다. 이 기능이 충족될 때만 명실공히 ‘성평등가족부’의 위상을 가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성평등 상황을 개선해갈 수 있을 것이다.
[플랫]내일부터 ‘성평등가족부’… 확대된 여가부 ‘고용평등’ 추진한다
이번 개정안에서 논의할 만한 것이 있다면, 고용노동부의 여성 고용 정책 일부를 이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A)와 고용평등공시제가 주요 대상이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는 공공기관, 지방공사와 지방공단,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과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고용률과 여성 관리자율을 동종 산업 유사 규모 기업의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표를 갖는다. 70% 수준에 미달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여성 고용 개선을 위한 시행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행 실적을 평가하며 미이행 기업에 대해서는 명단을 공표한다.
이 제도는 그동안 기업에서 여성 고용을 늘리고 관리직 진출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 또한 지적돼왔다. 평가의 정확성과 신뢰성은 물론, 이행 강제력과 미이행 기업에 대한 구속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라서는 ‘규제 완화’라는 정책 기조 아래 기업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백안시되고 자율적인 노력으로 맡겨지는 등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됐다.
고용평등공시제는 현재 성별근로공시제라는 이름으로 고용노동부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기업의 채용, 근로, 승진, 퇴직 등 고용 과정의 성비를 공개해 기업 스스로 고용상 성차별 현황을 인지하고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사회적 반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용평등공시제, 정확히 표현하면, 성평등고용공시제는 기업의 현황을 ‘공시’하는 데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성별 임금 격차는 산업과 기업, 직종, 고용 형태, 근속연수 등 다양한 요인들이 중첩되어 발생하며 각 기업의 사정에 따라 원인과 구조도 다르다. 그러므로 기업이 성별 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해 각자의 개선 방안을 스스로 찾아 시행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공시 기업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제대로 시행하면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성평등가족부는 성별 임금 격차 해소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고용노동부와 함께 전담하는 부서가 될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과 다행스러운 점 모두 눈에 띈다. 걱정스러운 점은 인력과 시스템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고용노동부에서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 제도들을 힘도 조직도 작은 성평등가족부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주도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부처의 수장이 이 문제에 대해 ‘아마도’ 높은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원민경 장관은 물론, 김영훈 장관 역시 여성 고용 정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진 것으로 안다. 두 부처 장관들의 아름다운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20여년 동안 30%대를 벗어나지 못해온 성별 임금 격차의 높은 벽을 속 시원히 깨부수기 바란다. 이를 위한 대통령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長生) 탄광. 이곳은 1942년 2월3일 해저 갱도가 무너져 183명이 수장된 비극의 현장이다. 희생자 중 136명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이었다. 일본인도 47명이 사망했지만, 탄광 측은 바닷속 갱도 입구를 막아 사고를 은폐했다. 일본 정부도 지금까지 진상 규명, 유해 발굴 작업 하나 하지 않았다. 그대로 묻힐 뻔한 조세이 탄광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진 건 일본의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새기는 모임) 덕이다. 이 단체가 은폐된 진실을 알리고, 성금을 모아 유해 탐사에도 나섰다. 그간 수차례 수중 조사에도 진척이 없던 유해 발굴 프로젝트는 최근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지난 8월2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수중 조사에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83년 만에 바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수몰된 유골을 찾아낸 이들은 지난 4월부터 한·일 공동조사 작업에 합류한 김경수·김수은 잠수사다. 이들은 15년차 연인이자 ‘버디’(다이빙 짝)로 물속에선 늘 함께 움직인다. 지난 25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경수씨는 “희생자 유골을 (한국인이) 발견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만하고, 그간 난관이 많았던 유골 발굴 프로젝트에 큰 동력이 돼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4월엔 이렇다할 결과가 없어서 스스로 좀 화도 나고 실망도 했다”며 “유골을 발견함으로써 할 도리를 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시민단체 주도이다 보니 지원이나 스케줄 조정 등이 원활하지 않아 작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수은씨는 “위치상으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4명분의 뼈가 흩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정부 측 예산 지원이 돼서 크레인 바지선으로 주변 구조물들만 치워도 유골 발굴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본격적으로 탐사가 진행되면 더 많은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유골이 확인됐는데도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일본 경찰이 이번에 발견된 뼈 4점 모두 사람의 것으로 판명됐다고 지난 8월27일 밝혔지만, 유전자 감식과 신원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새기는 모임’은 내년 2월 추가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두 사람은 “기다리시는 유가족 분들이 많은데, 누가 하든지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면서 양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 조세이 탄광 유골 발굴 작업은 위험한 수중 조사인데,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경수 = 조세이 탄광 참사는 지금이야 이슈가 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데, 아마도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이번 발굴 작업에 참여한 일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가 저한테 재호흡기(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만 일부 추가하여 다시 호흡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 교육을 받으려고 문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일본에서 하고 있는 탐사에 대해 듣게 됐어요. 그러다가 이사지가 작년 12월 오키나와 옆 미나미다이토 섬에 있는 동굴 탐사에 오라고 해서 갔어요. 그때 조세이 탄광 프로젝트를 같이하자고 제안했어요. 당시엔 뭔지 잘 몰랐고, 검색해보고 나서야 바닷속 유골들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위험한 거야 저희들도 늘 탐사를 다니니까 크게 걸리지는 않았고요. 비용이 부담돼 고민을 하긴 했어요. 그래도 한국 분들이 많이 남아 계시다고 하니까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 맘먹었지요.
- 일본 단체에서 모든 비용을 지원한 게 아니군요.
김경수 = 단체 지원은 비행기와 숙소 정도입니다. 장시간 물속에 있으려면 재호흡기를 써야 해요. 말 그대로 내가 내뱉은 숨을 계속 재순환해서 쓰는 장비라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재호흡기는 조세이 탄광 현장에 진입하기엔 너무 컸어요. 탐사에 참여하려면 작은 사이즈의 재호흡기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장비를 산다고 해도, 사용하기 전 교육을 받고 훈련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요.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니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재호흡기를 사서 갔는데, 둘이 합쳐서 거의 5000만원 정도 들었어요.
- 지난 4월1~3일 세 번째 발굴 조사에 한국인 잠수사가 처음 투입됐는데요.
김경수 = 저희는 첫 번째 피어(배기탑) 말고 두 번째 피어를 통해서 진입했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서 손으로 더듬어서 확인해야 할 정도로 시야 확보가 안 됐어요. 이사지가 ‘입구가 막힌 것 같다’ ‘확실히 막혔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일단 저희 목표는 혹시 사이드 통로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였거든요. 먼저 들어간 김수은 강사가 무너져 있는 틈 사이로 통로를 발견했고, 다음날 들어가 봤더니 어느 정도는 진입이 가능했는데 안쪽으로는 막혀 있어서 더 이상 들어가기는 힘들어 복귀했어요. 그래서 메인 갱도로 진입하기보다는 피어를 통해 다른 우회 통로가 있는지 찾아보는 게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엔 피어 내부에 구조물들이 무너져 있어 바닥까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조금씩 치우며 들어가야 했거든요. 사실 정부에서 예산 지원이 되면 크레인 바지선을 동원해 안에 있는 구조물들만 치워도 훨씬 작업하기가 쉬워요. 모금한 돈으로 해야 하니 예산이 빠듯하잖아요. 다이버들이 도르래 써서 수작업으로 제거하니까 시간도 엄청 많이 걸리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제거가 안 됐어요.
- 이렇다 할 진척이 없었군요.
김경수 = 4월에 갔을 때만 해도 일본 작업자들 얘기로는 바닥까지는 아예 못 내려가는 상황이고, 17m 지점에 한 60㎝ 정도 되는 통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정도면 좁아서 사람이 통과를 못해요. 이사지가 가이드용 줄을 가지고 들어가 어림잡아 추정해 놓은 걸 저희가 들어가 측량했어요. 이사지가 대략적인 추정치로만 얘기하니까 실제로 얼마나 탐사됐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후 ‘새기는 모임’이 크레인 작업선을 동원해 피어 안에 쌓인 수많은 철관과 목재 등을 걷어내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 일부가 제거되자 6월에 이사지가 최초로 사고 현장과 연결되는 통로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거죠.
그로부터 두 달 후인 8월8일 ‘새기는 모임’은 조세이 탄광 사고 현장으로 접근 가능한 출입문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바다에서 배기구를 따라간 결과 갱도를 잇는 문 구실을 하던 벽돌 구조물과 송판을 발견한 것이다. 갱도 입구가 있는 해안가로부터 500m 지점이다.
- 8월 조사에선 성과가 있었습니다.
김경수 = 4월엔 성과가 없어서 실망했어요. 그때는 양현 회장님(일본조세이탄광희생자 한국유족회)도 현장에 오셨고, 다른 가족 분들도 기다리셔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했는데 유골 발굴을 못했어요. 스스로 화도 나고 실망했습니다. 잠수부들이 탐사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유골을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지만, 장애물들에 가로막혀 더는 전진하지 못하게 되자 단체 측은 물론이고 다들 침울해했어요. 그래서 8월 조사 땐 아예 기대를 안 했는지 현장이 되게 조용했어요. 유가족 분이나 기자들도 안 오셨어요. 저희가 뼈를 발견했다니까 부랴부랴 몇분이 오셨고,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어요. 이번에 유골을 발견함으로써 ‘새기는 모임’ 측에 큰 동력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어쨌든 할 도리는 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아마 이번에 뭐라도 발견이 안 됐으면 엄청 분위기가 안 좋았을 거예요.
- 발견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주세요.
김경수 = 첫날(8월25일) 희생자 것으로 보이는 대퇴부 뼈 3점을 발견했어요. 근데 다음날은 자꾸 쉬라고 하더라고요. 8월 조사는 3일 예정이었는데, 일정을 줄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이틀 연속으로 들어가 작업을 마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26일 들어갔는데 전날 뼈를 발견한 곳에서 두개골을 찾은 겁니다. 주변에 장화 속에 담긴 또 다른 유골들도 보였는데 사람 뼈라는 걸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두개골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 수습해 올라왔습니다.
김수은 = 애초에 기대를 안 했는지 유골을 운반할 통도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그래서 첫날은 뼈 3점을 그냥 손으로 들고 나왔어요. 다음날엔 초록색 플라스틱 큰 박스 하나를 줘서 거기에다 모시고 나왔습니다. 그날 확인한 것만 해도 위치상으로 보면 누워 계시는 한 분, 그 옆으로 장화랑 뼈가 있고, 거기서 떨어진 곳에도 장화랑 뼈가 남아 있고, 테이블 주변에도 뼈가 있어서 최소 4명분의 유골을 확인한 셈입니다. 연속적으로 작업했으면 이번에 네 분은 더 모시고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바닥 밑에 더 많은 분의 유골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단체도 나름 계획이 있겠지만 저희 입장에선 우리한테 온전히 일을 맡겨주지 않으니까 좀 답답했어요.
- 흙더미에 있던 두개골 상태가 꽤 좋던데요. 안에 있는 유골은 어떤 상태인가요.
김수은 = ‘작업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유해도 있다’는 얘기도 나왔던데, 작업복이 남아 있는 건 아니고요. 세월이 오래 지났으니 그런 것들은 다 삭아 없어졌죠. 사람 몸에 있는 유기화합물이랑 동물 침전물이라든가 석회, 석탄들이 물속에 녹아서 화학 작용을 한 것이죠.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화석도 사람 모양과 똑같이 돼 있는데 그게 실제로 사람 살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형태로 남아 있다고 보시면 돼요. 만지면 부서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일 확실한 방법은 DNA 검사죠.
- 유가족이나 현장 반응은 어땠나요.
김수은 = 이번엔 유골 발굴이란 결과를 갖고 나왔는데 아무도 연락을 안 주시더라고요. ‘고생했다’ 이렇게 문자라도 하나 보내주실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어서 내심 섭섭했습니다.
김경수 = 4월에 갔을 때는 한국 유가족들과 저녁 한 번 먹었어요. 이번에는 아무도 안 계셔서 못 만났어요. 현장에 계셨던 분들은 감동적이고 기분 좋으셨겠죠. 저희가 일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 분들도 안 계시니까 저희로선 현장 분위기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요. 그나저나 유골이 나왔으니 정부에서 이제 지원을 좀 할까요?
- 일본 정부 차원의 지원과 의지가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데요.
김경수 = 4월인가, 행정안전부에서 유족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 신청을 받는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이번에 나온 유골이랑 유족들의 DNA와 매칭해야 되는데 일본 정부에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도 행안부에서 정부가 뭘 지원해야 하는지 등을 논의하는 미팅에 참여한 적 있는데요. 지금 확실한 방법은 갱도에 있는 물을 빼내 보강작업을 하면서 진입하는 것인데, 비용이 엄청나게 들겠죠. 6000억원 정도 든다고 해요. 지금이야 국민들이 유골 모셔 와야 된다고 하지만, 이 정도 돈이 들어간다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정부 간 협력이 있어야 발굴 작업과 유해 수습에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요?
- 수중 탐사에 대해 현실적인 방안을 조언해주세요.
김경수 = 아직까지는 다이버들이 들어가는 게 제일 현실적이긴 해요. 지금처럼 작업을 찔끔찔끔 해선 답이 없고요. 수중 탐사는 장비도 많고 준비 작업이 많아서 1∼2일 하고 빠지는 작업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아요. 예산 문제가 해소된다면 작업을 길게 해야죠. 메인 갱도는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포기해야 되고 이제 피어 쪽을 통해 계속 길을 개척해 가는 수밖에 없어요.
김수은 = 피어를 통해 들어가야 하잖아요. 아직까지도 피어에서 터널 들어가는 입구 부분에 무너진 구조물이 많아요. 그것만이라도 크레인 바지선이 정리만 해줘도 좋겠어요. 피어에서 들어가는 입구가 지금 제일 좁기도 하고, 제일 무너지기도 쉽거든요. 확인된 유골만이라도 가지고 나오려면 최소 이 작업은 돼야 합니다.
-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은 없나요.
김경수 = 한국 정부가 남의 나라에서 지원하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긴 해요. 협회라도 있으면 거기를 통해 할 수 있을 텐데 다이빙 시장이 워낙 작아서 어떻게 지원할 건지에 대해서도 고민스러워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 내년 2월 외국 잠수사들을 초청해 추가 조사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참여하시나요.
김경수 = 일본 시민단체가 진행하는 것이라서 정보 전달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어요. 막상 조사에 뛰어들고 보니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상황이 꽤 복잡하더라고요. 내년에도 이사지가 함께하자고 의사 타진을 해왔는데 이미 잡힌 탐사 일정도 있고 해서 검토 중입니다.
- 아무래도 현장 경험 있는 잠수부들이 가는 게 효율적일 텐데요.
김경수 = 현장에 통로가 여러 군데면, 여러 팀이 동시에 작업하는 게 낫죠. 그런데 거기는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한 군데밖에 없어요. 동시에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지 않아 1∼2명 정도밖에 못 들어가요. 무엇보다 일본 단체에서 하는 것이어서 일본 다이버들에겐 비용 책정이 돼 있지만, 저희 같은 외국인 다이버들한테는 지원이 없어요. 저희로선 나름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시간과 돈을 썼는데 좀 맥이 빠지죠. 한국 정부나 시민단체, 유가족 측에서 지원해 진행한다면 모르겠지만 일본 시민단체 주도라서 그런지 한계점이 많이 보여요. 기다리시는 유가족 분이 많을 텐데, 누가 하든지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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