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제도와 정책이 실패를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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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비극이 연일 이어지고, 응급의학과와 소아과 등 생명과 직결된 현장에는 전공의의 발길이 끊겼다. 젊고 똑똑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관념적 미래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다. 아픈 환자와 가족들이 느끼는 불안과 환자를 돌봐줄 의사들의 소진과 이탈을 바라보는 대중의 불편은 정당하다. 그러나 모종의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것이 이 파국을 풀어내는 길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제도가 사회를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형성하고, 스스로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특정 방식으로 분류, 해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정에선 실질적 문제보다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설명이 우선되기 쉬우며, 그 결과 시스템의 실패가 특정 주체의 문제로 환원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보건의료체계가 바로 이 지점에 겹쳐보인다. 의·정 갈등에서 의료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든 여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경직된 태도, 소통의 부재 등 제반 사항에 골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정책 실패의 구조적 원인을 특정 집단으로 그저 환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의사들이 대중의 뭇매를 맞는 동안, 치밀한 수급 추계도 없이 증원을 지시하며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권력에 부역해, 무리한 명령을 남발하던 보건복지부 및 교육부 관료 중 실질적 책임을 진 이는 아무도 없다.
정책 실패로 인한 치명적 비극 중 하나는 필수의료 현장을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 곧 ‘상징성’의 붕괴다. 수십년간 낮은 수가와 힘든 노동 강도에도 청년 의사들을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에 묶어두었던 것은 ‘사람을 살린다’는 의업에 대한 막연하지만 강력한 상징자본이었고 이는 의료시장에서 청년의사들의 소신을 대변하는 최후의 동력이었다. 주지하듯, 의·정 갈등을 거치며 이러한 상징자본의 붕괴는 가속화됐다. 국가와 관료 조직은 자신들의 제도적 실패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그 대신 정부의 기조와 언론의 프레임이 맞물리면서 현장을 지키던 의사들마저 ‘전문직 기득권’ 프레임에 매몰되었다. 또한 불가항력적 비극에조차 형사처벌을 받는 판례가 축적되며 필수의료 의사들이 자괴와 위기에 내몰린 현실이다. 코로나19 시기 국가적 위기 속 최전선에 섰던 젊은 의사들은 공적 책무를 요구받았지만, 이후 의료정책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는 자신들이 정책 실패의 한 축으로 ‘처단’ 되는 경험을 했다. 묻고 싶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과연 무엇이 좋아졌는가.
국가와 제도는 힘이 세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 정교한 질문이 필요하고 최초의 질문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선험된 실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사고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 대한 최근 공청회에서 그간의 실패와 달리, 탁상행정에 매진하는 관료 및 학자들만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시도가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온 적 없다. 메리 더글러스가 간파했듯 제도와 정책은 자기 정당화를 수행하므로, 실패를 기억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자가당착을 넘어서야 한다.
현재 지역 필수 공공의료의 실패에 있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임을 상기한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정직하고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의 정상화는 정부가 힘을 휘두르는 대신, 중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열린 정책을 기치로 신뢰와 유대를 가장 먼저 쌓아 올릴 때 가능해질 것이라 믿는다.
국내 연구진이 심장수술에서 쓰는 소·돼지의 조직에 한 종류의 줄기세포만을 주입해 이식 판막을 살아있는 조직처럼 되살리는 재세포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면역 거부반응과 석회화 위험 탓에 판막을 교체하는 재수술을 해야 했던 선천성 심장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임홍국 교수, 의생명연구원 김소영 연구교수,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 연구팀은 이종항원을 제거한 돼지 심낭에 줄기세포를 단독 주입해 재세포화 등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바이오엔지니어링(Bioengineering)’에 게재됐다.
심장의 판막은 혈액이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곳에 이상이 있으면 혈류에 문제가 생겨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현재 심장 판막 수술에는 돼지나 소에게서 조직을 채취해 이식하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하지만 다른 종에서 얻은 조직이어서 사람에게 없는 이종항원이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칼슘이 쌓이는 석회화를 불러 이식 실패와 재수술의 원인이 되어왔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진은 앞서 진행한 연구에서 효소를 써서 이종항원을 제거하고 인체의 줄기세포로 재세포화를 유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다만 실제 치료 과정에서 더 단순한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어 줄기세포 중 한 종류만 쓰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법이 가능할지 검토했다.
연구진은 면역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게 돼지 심낭 조직에서 세포를 분리하는 탈세포화 과정을 거친 뒤 두 가지 효소(α-갈락토시다아제·PNGase-F)를 함께 처리해 이종항원을 제거했다. 이어 주입할 줄기세포가 잘 부착되도록 특수물질로 표면을 코팅한 이종심장이식편을 제작한 뒤, 여기에 사람 지방유래 줄기세포를 넣어 8주간 배양하면서 다시 세포가 증식되는지 관찰했다.
실험 결과, 두 효소를 함께 사용한 뒤에도 판막의 조직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으며 주입된 줄기세포는 28일째 조직 기질 안쪽까지 침투한 것으로 확인됐다. 56일째에는 표면과 내부 전반에 세포가 고르게 분포해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재형성이 더욱 활발해졌다. 재세포화 관련 단백질(비멘틴·파이브로넥틴·칼포닌 등)의 발현도 늘어 줄기세포가 조직 내부에서 새로운 세포로 성공적으로 분화했음을 보여줬다.
동물 실험에서도 이식된 판막이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 제거 후 조직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석회화가 발생하지 않게 처리한 이식편에서는 재세포화가 원활하게 이뤄졌고, 석회화 수치도 재세포화를 시행하지 않은 그룹보다 유의미하게 낮은 결과를 보였다.
임홍국 교수는 “이번 연구는 면역학적 장벽 제거와 세포 정착, 조직 재형성과 석회화 억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이 기술을 실제 환자 치료로 연결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제도가 사회를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형성하고, 스스로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특정 방식으로 분류, 해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정에선 실질적 문제보다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설명이 우선되기 쉬우며, 그 결과 시스템의 실패가 특정 주체의 문제로 환원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보건의료체계가 바로 이 지점에 겹쳐보인다. 의·정 갈등에서 의료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든 여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경직된 태도, 소통의 부재 등 제반 사항에 골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정책 실패의 구조적 원인을 특정 집단으로 그저 환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의사들이 대중의 뭇매를 맞는 동안, 치밀한 수급 추계도 없이 증원을 지시하며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권력에 부역해, 무리한 명령을 남발하던 보건복지부 및 교육부 관료 중 실질적 책임을 진 이는 아무도 없다.
정책 실패로 인한 치명적 비극 중 하나는 필수의료 현장을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 곧 ‘상징성’의 붕괴다. 수십년간 낮은 수가와 힘든 노동 강도에도 청년 의사들을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에 묶어두었던 것은 ‘사람을 살린다’는 의업에 대한 막연하지만 강력한 상징자본이었고 이는 의료시장에서 청년의사들의 소신을 대변하는 최후의 동력이었다. 주지하듯, 의·정 갈등을 거치며 이러한 상징자본의 붕괴는 가속화됐다. 국가와 관료 조직은 자신들의 제도적 실패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그 대신 정부의 기조와 언론의 프레임이 맞물리면서 현장을 지키던 의사들마저 ‘전문직 기득권’ 프레임에 매몰되었다. 또한 불가항력적 비극에조차 형사처벌을 받는 판례가 축적되며 필수의료 의사들이 자괴와 위기에 내몰린 현실이다. 코로나19 시기 국가적 위기 속 최전선에 섰던 젊은 의사들은 공적 책무를 요구받았지만, 이후 의료정책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는 자신들이 정책 실패의 한 축으로 ‘처단’ 되는 경험을 했다. 묻고 싶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과연 무엇이 좋아졌는가.
국가와 제도는 힘이 세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 정교한 질문이 필요하고 최초의 질문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선험된 실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사고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 대한 최근 공청회에서 그간의 실패와 달리, 탁상행정에 매진하는 관료 및 학자들만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시도가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온 적 없다. 메리 더글러스가 간파했듯 제도와 정책은 자기 정당화를 수행하므로, 실패를 기억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자가당착을 넘어서야 한다.
현재 지역 필수 공공의료의 실패에 있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임을 상기한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정직하고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의 정상화는 정부가 힘을 휘두르는 대신, 중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열린 정책을 기치로 신뢰와 유대를 가장 먼저 쌓아 올릴 때 가능해질 것이라 믿는다.
국내 연구진이 심장수술에서 쓰는 소·돼지의 조직에 한 종류의 줄기세포만을 주입해 이식 판막을 살아있는 조직처럼 되살리는 재세포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면역 거부반응과 석회화 위험 탓에 판막을 교체하는 재수술을 해야 했던 선천성 심장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임홍국 교수, 의생명연구원 김소영 연구교수,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 연구팀은 이종항원을 제거한 돼지 심낭에 줄기세포를 단독 주입해 재세포화 등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바이오엔지니어링(Bioengineering)’에 게재됐다.
심장의 판막은 혈액이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곳에 이상이 있으면 혈류에 문제가 생겨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현재 심장 판막 수술에는 돼지나 소에게서 조직을 채취해 이식하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하지만 다른 종에서 얻은 조직이어서 사람에게 없는 이종항원이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칼슘이 쌓이는 석회화를 불러 이식 실패와 재수술의 원인이 되어왔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진은 앞서 진행한 연구에서 효소를 써서 이종항원을 제거하고 인체의 줄기세포로 재세포화를 유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다만 실제 치료 과정에서 더 단순한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어 줄기세포 중 한 종류만 쓰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법이 가능할지 검토했다.
연구진은 면역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게 돼지 심낭 조직에서 세포를 분리하는 탈세포화 과정을 거친 뒤 두 가지 효소(α-갈락토시다아제·PNGase-F)를 함께 처리해 이종항원을 제거했다. 이어 주입할 줄기세포가 잘 부착되도록 특수물질로 표면을 코팅한 이종심장이식편을 제작한 뒤, 여기에 사람 지방유래 줄기세포를 넣어 8주간 배양하면서 다시 세포가 증식되는지 관찰했다.
실험 결과, 두 효소를 함께 사용한 뒤에도 판막의 조직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으며 주입된 줄기세포는 28일째 조직 기질 안쪽까지 침투한 것으로 확인됐다. 56일째에는 표면과 내부 전반에 세포가 고르게 분포해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재형성이 더욱 활발해졌다. 재세포화 관련 단백질(비멘틴·파이브로넥틴·칼포닌 등)의 발현도 늘어 줄기세포가 조직 내부에서 새로운 세포로 성공적으로 분화했음을 보여줬다.
동물 실험에서도 이식된 판막이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 제거 후 조직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석회화가 발생하지 않게 처리한 이식편에서는 재세포화가 원활하게 이뤄졌고, 석회화 수치도 재세포화를 시행하지 않은 그룹보다 유의미하게 낮은 결과를 보였다.
임홍국 교수는 “이번 연구는 면역학적 장벽 제거와 세포 정착, 조직 재형성과 석회화 억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이 기술을 실제 환자 치료로 연결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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