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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을 열며]‘호프’ 속 괴수의 눈물을 알아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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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가불이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0회   작성일Date 26-07-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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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망작이냐, 수작이냐는 엇갈린 평가 속에 영화를 두고 각종 ‘해석 투쟁’이 벌어진다. 갑론을박에 동참하기 위해서 <호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영화 속 괴수(외계인)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다. <호프>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타자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괴수는 영화 속에 먼저 냄새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마을 사람들은 괴수가 남긴 지독한 악취에 “이게 무슨 냄새야?”라며 연신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돌린다. 우리가 낯선 타자를 배척하고 혐오할 때 냄새가 강력한 감각적 기제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 괴수가 남긴 끈적한 점액질의 체액은 혐오를 더욱 증폭시킨다. ‘완벽한 타자’의 조건을 갖춘 괴수를 마을 사람들은 확신을 갖고 증오한다. “증오하는 자에게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한 점의 회의도 있어선 안 된다”는 독일 저널리스트·작가 카롤린 엠케(<혐오사회>)의 말처럼.
    ‘완벽한 타자’를 향한 증오와 혐오는타자의 고통을 제대로 볼 때 힘 잃어광주와 제주 4·3 다룬 한강의 소설무지와 오해 벗어날 통로가 되어줘
    그런데 한 점 회의를 품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 ‘범석’(황정민)이다. 괴수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범석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된다. 눈이 마주치고, 범석은 괴수가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내몰린 괴수의 두려움과 고통을 알아본 것이다. 엠케는 혐오가 대상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는 데서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정확히 알게 된 존재를 온전히 미워하기는 어렵다. 범석은 홀로 괴수를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다.
    이 장면이 눈길을 끈 것은 우리의 일상과 문화 깊숙이 침투한 혐오 문제 때문이다. 스타벅스 ‘탱크데이’와 이를 차용한 배재고의 응원구호에서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공간에 불쑥 솟아오른 혐오의 덩어리를 마주해야 했다. 당혹감과 낭패감 속에 한국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실패했을까를 되묻게 됐다. 5·18 당시 계엄군의 장갑차에 짓밟히고 총탄에 맞아 숨진 이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그 이후 지속돼온 호남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안다면’ 우리는 이런 말을 재미 삼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직접 만나 눈을 마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런 ‘알아봄’이 가능할까? 문학과 예술은 우리가 만나본 적 없는 사람, 경험하지 않은 일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줬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참상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알게 되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일은 바다 건너 프랑스 아비뇽에서도 일어났다. 올해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공연 두 편이 무대에 올랐다. 낭독공연 <새>(Oiseau)와 이탈리아 연극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다. 이탈리아 연출가와 배우는 작품을 위해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한강의 소설이 이탈리아 예술가들을 제주로 이끌었고, 그들의 연극은 유럽 관객들을 제주 4·3의 기억 앞으로 데려갔다.
    한데 정작 한국에서는 5·18과 같은 국가폭력의 기억을 조롱과 혐오의 언어로 훼손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소설이 불티나게 팔렸는데도 그렇다는 것에 더 난망해진다. 5·18과 제주 4·3은 다른 사건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둘은 국가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행한 학살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마친 뒤 뭔가에 이끌리듯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혐오는 무지와 오해에 기대어 자란다. 혐오의 게으른 서사를 벗어나기 위해선 정확히 알고자 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에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우리의 모국어로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여 써낸 소설들이 있다. 한강은 “혐오가 문제라는 일치된 생각을 한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혐오는 타자를 뭉뚱그리지만, 훌륭한 예술은 그 존재를 정확히 보게 한다. 그러니 <소년이 온다>를,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보자.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비극이 연일 이어지고, 응급의학과와 소아과 등 생명과 직결된 현장에는 전공의의 발길이 끊겼다. 젊고 똑똑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관념적 미래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다. 아픈 환자와 가족들이 느끼는 불안과 환자를 돌봐줄 의사들의 소진과 이탈을 바라보는 대중의 불편은 정당하다. 그러나 모종의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것이 이 파국을 풀어내는 길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제도가 사회를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형성하고, 스스로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특정 방식으로 분류, 해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정에선 실질적 문제보다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설명이 우선되기 쉬우며, 그 결과 시스템의 실패가 특정 주체의 문제로 환원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보건의료체계가 바로 이 지점에 겹쳐보인다. 의·정 갈등에서 의료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든 여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경직된 태도, 소통의 부재 등 제반 사항에 골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정책 실패의 구조적 원인을 특정 집단으로 그저 환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의사들이 대중의 뭇매를 맞는 동안, 치밀한 수급 추계도 없이 증원을 지시하며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권력에 부역해, 무리한 명령을 남발하던 보건복지부 및 교육부 관료 중 실질적 책임을 진 이는 아무도 없다.
    정책 실패로 인한 치명적 비극 중 하나는 필수의료 현장을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 곧 ‘상징성’의 붕괴다. 수십년간 낮은 수가와 힘든 노동 강도에도 청년 의사들을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에 묶어두었던 것은 ‘사람을 살린다’는 의업에 대한 막연하지만 강력한 상징자본이었고 이는 의료시장에서 청년의사들의 소신을 대변하는 최후의 동력이었다. 주지하듯, 의·정 갈등을 거치며 이러한 상징자본의 붕괴는 가속화됐다. 국가와 관료 조직은 자신들의 제도적 실패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그 대신 정부의 기조와 언론의 프레임이 맞물리면서 현장을 지키던 의사들마저 ‘전문직 기득권’ 프레임에 매몰되었다. 또한 불가항력적 비극에조차 형사처벌을 받는 판례가 축적되며 필수의료 의사들이 자괴와 위기에 내몰린 현실이다. 코로나19 시기 국가적 위기 속 최전선에 섰던 젊은 의사들은 공적 책무를 요구받았지만, 이후 의료정책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는 자신들이 정책 실패의 한 축으로 ‘처단’ 되는 경험을 했다. 묻고 싶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과연 무엇이 좋아졌는가.
    국가와 제도는 힘이 세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 정교한 질문이 필요하고 최초의 질문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선험된 실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사고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 대한 최근 공청회에서 그간의 실패와 달리, 탁상행정에 매진하는 관료 및 학자들만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시도가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온 적 없다. 메리 더글러스가 간파했듯 제도와 정책은 자기 정당화를 수행하므로, 실패를 기억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자가당착을 넘어서야 한다.
    현재 지역 필수 공공의료의 실패에 있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임을 상기한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정직하고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의 정상화는 정부가 힘을 휘두르는 대신, 중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열린 정책을 기치로 신뢰와 유대를 가장 먼저 쌓아 올릴 때 가능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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